


카드가 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써있다.
때때로 나는 얘가 영영 안 돌아오는 건가 거기 영영 사는 건가 섭섭하지만,
1년에 한 두 번쯤 보고 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됐지 뭐, 한다.
현진과 학교 후문에서 같이 살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다시 10년도 금방이겠지.
이십대 초반 말갛던 얼굴이 어른되었듯
이 새 신랑 신부의 얼굴도 낡아가겠지만ㅋ
다시 살아내는 10년동안 실컷 평화롭고 행복하길.



나이를 한 살 먹은 걸로 아는데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좋은 시기 응원하고 축복만 해도 모자란 때에 근거도 없는 불안감을 알아달라며 한참 떼를 써놓고 후회한다.
걱정하거나 불안해 한다고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작은 기쁨에 크게 기뻐하고, 그 외는 빨리 잊어야지. 내가 용서해야 할 일들은 현재가 아닌 곳에 있고, 당신과는 관계가 없다.
Life is short, break the rules. Forgive quickly, kiss slowly. Love truly. Laugh uncontrollably and never regret anything that makes you smile.

혹성탈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
Don't get too attached.
그러나 미리 말했대도
아님 attachment theory를 잘 안대도
말이나 이론대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내 커리어에서 앞으로 다신 못 만날, 최고의 보스이자 멘토였던(그러나 그 땐 이렇게까지 절절하진 않았던), 홍마왕님.
어느날 뜬금없이 커피에 빠지시더니만
Microsoft 임원 따위, 슉 내다버리고
커피가 나오는 나라들, 중미니 남미니 여행을 다녀오시고 교육을 받고 하시더니
기어코 커피 가게를 차리셨다.
결국 모든 먹거리의 근본은 좋은 재료. 홍마왕님의 영도 아래 ㅋㅋ 스페셜티 커피란 게 있단 걸 알게 되고, 로스팅이나 커피 내리는 기술은 부차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데서 커피 마시면, 오늘처럼 어지럽고 속이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커피 자체가 속에 안 좋다기 보단, 안 좋은 커피가 속에 안 좋은 거였어.
고기 맛을 보고 나면 돌아 갈 수 없다. 홍마왕님의 커피가 떨어지니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하루다.
심지어 울 사무실 90년생 인턴조차,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딴 건 맛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캡슐 커피 머신 두 대는 먼지만 뽀얗고.
꼭, 드셔보시길. 지금까지 마신 건 커피도 아니었단 걸 알게 될테니. ㅎㅎ

늘 듣고 다니던 노래인데 문득,
가사가 상처에 소금물 닿은 것처럼 아팠다.
운전하다 말고 눈물이 핑 도는 정도가 아니라 펑펑 흘러서 참 곤란했다는.
날 손바닥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내 엄마.
엄마에게 봄빛같았던 날들을 숑숑 빼먹으며 딸년이 컸지.
엄마한테, 또 엄마한테 잘하는 아빠한테,
잘해야지
맨날 무너지는 다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
처음 샀던 엄지만한 신발
품에 안고 기뻐하던 어느 봄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던 엄마의 얼굴
그토록 밝게 빛나던 4월의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설레임 가득하던
엄마의 눈망울
사랑스런 너를 만나던 날
바보처럼 아빤 울기만 하고
조심스레 너의 작은 손을
엄만 한참을 손에 쥐고 인사를 했단다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지친 하루 집에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아파트 창문 새로 너를 안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
나는 웃을 수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라는 이름 앞에
때론 힘겨워 눈물 흘릴 때면 이 노래를 기억해 주렴
너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선물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너란 꿈을 품게 됐단다
그리고 널 위한 이 노래
너의 작은 손.. 빛나던 미소..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기억해 주겠니.. 널 위한 이 노래..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의 차이 중 뚜렷한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게 화분이라면 필요 없는 누런 이파리나, 그게 꽃이라면 시들거나 모양이 약간 이상한 꽃 이파리들을 달고 있다는 거다. 반대로 죽어 있는 것들은, 그러니까 모조품들은 완벽하게 싱싱하고, 완벽하게 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일수록 불완전하고 상처는 자주 파고들며 생명의 본질이 연한 것이기에 상처는 더 깊다.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중
1.
얼마 전에 썼던 <나를 따르라> 외전 쯤 되는 글. 어떤 힘이 사람이 사람을 따르게 하는지, Leader와 Follower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좀 더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리더십, 영향력(influence), 끌림 등등 여러 가지 단어로 그 힘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머리 검은 짐승의 마음을 사고, 내가 의사 결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계속 궁금하고 신기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런 엄청난 거 없어, 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거야 웃기고 있어, 하며 덮어버리기를 반복한다.
나는 다른 인센티브는 중요치 않고, 상대가 내가 따를만한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그런 사람이 맞냐고 질문했었다. 생각해보니 말로는 증명할 길 없는 그런 질문을 왜 했는지 대략 우문이었구나.
마음대로 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운다. 내가 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배운다. 내 의지로 선택했다고 착각하지만, 그 의지가 굳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부요인이 작용하는지, 때로 그런 요인들이 내가 고를 수 있는 옵션을 얼마나 많이 빼앗는지를 배운다. 이 과정은 숨쉬는 게 힘들 정도로 마음 아프고, 때로 미숙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다르게 쓰면, 이 정도는 마땅하다 느껴질 정도로 충만하고 반짝이며 감사하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이미 말한 적 있듯, 함부로 타인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2.
“딸”이 “따름”의 준말이라는 얘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를 따르다 남편을 따르게 되는, 딸.
언젠가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며 단호히 말했던 게 얼마나 싸가지 없나 이제야 깨닫는다. 일정 수준의 돈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아주 중요하더라.
요 며칠 스스로를 들여다 보니, 나는 그저 이유기를 벗어나지 못한 “딸”일 뿐이었다. 숫자와 계약은 남자들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 나는 그런 거 모르고 살래요, 말랑하고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내 어미가 살았던 모양으로. 끝자락이 헤지려는 코트 자락을 하고, 술과 담배와 겨울 냄새가 섞인 가장이 귀가하면, 그를 끌어 안으며 나를 지켜줄 존재가 돌아왔다고 안도하면 충분했던 딸.
아무리 나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상황과 시간 앞에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월급의 일부를 원천징수 당하고 난 그런 거 모르고 살래 꺄르륵 즐거웠던 나는, 가족의 재정상태를 들여다 보며 아 이 짐이 정말 무거운 거였구나 이제야 안다. 늘 어미보다는 여자였던 엄마는 점점 더 아빠 대신 내게 기대오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서는 지속적으로 우아하기 어렵다는 걸 배운다.
이제서야 안다. 내가 얼마나 따르기만 해왔는지를. 딸은 소중한 걸 지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세계를, 반드시 배워야 할 때가 왔다. 어리광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