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요한 순간

Posted at January 06, 2012 12:44// Posted in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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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써있다.

때때로 나는 얘가 영영 안 돌아오는 건가 거기 영영 사는 건가 섭섭하지만,
1년에 한 두 번쯤 보고 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됐지 뭐, 한다.

현진과 학교 후문에서 같이 살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다시 10년도 금방이겠지.
이십대 초반 말갛던 얼굴이 어른되었듯
이 새 신랑 신부의 얼굴도 낡아가겠지만ㅋ
다시 살아내는 10년동안 실컷 평화롭고 행복하길.
January 06, 2012 12:44 January 06, 2012 12:44


새해에 살자

Posted at January 05, 2012 11:21// Posted in diary

나이를 한 살 먹은 걸로 아는데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좋은 시기 응원하고 축복만 해도 모자란 때에 근거도 없는 불안감을 알아달라며 한참 떼를 써놓고 후회한다.

걱정하거나 불안해 한다고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작은 기쁨에 크게 기뻐하고, 그 외는 빨리 잊어야지. 내가 용서해야 할 일들은 현재가 아닌 곳에 있고, 당신과는 관계가 없다.

Life is short, break the rules. Forgive quickly, kiss slowly. Love truly. Laugh uncontrollably and never regret anything that makes you smile.

January 05, 2012 11:21 January 05, 2012 11:21


Attachment

Posted at September 19, 2011 02:52// Posted in diary

혹성탈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

Don't get too attached.

그러나 미리 말했대도
아님 attachment theory를 잘 안대도
말이나 이론대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September 19, 2011 02:52 September 19, 2011 02:52


최고의 보스, 최고의 커피

Posted at July 04, 2011 23:24// Posted in diary

내 커리어에서 앞으로 다신 못 만날, 최고의 보스이자 멘토였던(그러나 그 땐 이렇게까지 절절하진 않았던), 홍마왕님.

어느날 뜬금없이 커피에 빠지시더니만
Microsoft 임원 따위, 슉 내다버리고
커피가 나오는 나라들, 중미니 남미니 여행을 다녀오시고 교육을 받고 하시더니
기어코 커피 가게를 차리셨다.

결국 모든 먹거리의 근본은 좋은 재료. 홍마왕님의 영도 아래 ㅋㅋ 스페셜티 커피란 게 있단 걸 알게 되고, 로스팅이나 커피 내리는 기술은 부차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데서 커피 마시면, 오늘처럼 어지럽고 속이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커피 자체가 속에 안 좋다기 보단, 안 좋은 커피가 속에 안 좋은 거였어.

고기 맛을 보고 나면 돌아 갈 수 없다. 홍마왕님의 커피가 떨어지니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하루다.

심지어 울 사무실 90년생 인턴조차,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딴 건 맛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캡슐 커피 머신 두 대는 먼지만 뽀얗고.

꼭, 드셔보시길. 지금까지 마신 건 커피도 아니었단 걸 알게 될테니. ㅎㅎ

July 04, 2011 23:24 July 04, 2011 23:24


나는 팔불출입니다

Posted at May 24, 2011 01:39// Posted in diary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건 기쁜 동시에 겁나는 일이다.

저 길 좋아보인다,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삶을 보면 '으악 내가 뭔가 된통 잘못한 게 아닐까?' 하고 그 때 훈수 괜히 뒀나 후회를 한다.

이런 훈수 중에 젤로 묵직했던 일은 동생의 입시였다. 격하게 압축하면 글을 쓰고 싶어하던 녀석을 국문과가 아닌 영화학과를 가게 만들었다. 글을 쓰던 영화를 찍던, 등 따시고 배부른 날 오기가 쉽지 않다는 건 공통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문과를 갔으면 교직이수로 선생질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자주 미안했다.

가장 미안한 점은 동생이 내 욕심을 대리하게 했다는 거였다. 세상 어느 누가 영화나 음악을 싫어한다고 대답하겠냐마는, 나는 좋은 걸 좋다고 강하게 쫓지 못하고, 신방과 정도에서 타협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동생의 학교와 전공을 얘기하면서 대리만족을 해왔다.

옆에서 지켜보니 동생 말마따나 영화는 '민폐의 예술'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부분은 예술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민폐에서 끝나고 말았다. 밤샘 촬영을 하고 들어와 골아떨어지는 녀석을 보거나, 한 겨울에도 열이 넘쳐 늘 반소매를 입던 녀석이 무려 내복을 챙기고, 무릎까지 바람이 들어온다고 하면 맘이 영 시려웠다.

시려워도 별 수 있나, 그의 학교생활과 연애지사, 성장을 지켜보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졸업작품으로 촬영한 영화가 칸에 갔다.
단편 영화 부문인 씨네 파운데이션. 1,589편의 단편 중에 16편이 선정되었다. 그 16편 중에 다시 3편 안에 들었다는 소식. 심사위원이 미셸 공드리.

감독은 집에 와서 가끔 자고 가던 동생의 학교 동기인데, 제대로 인사해본 기억은 없고, 그 친구가 공급해 준 모 브랜드의 샴푸를 매일 몹시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는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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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웹사이트 스크린 캡쳐 :) 링크는 여기.



네이버 영화팀에 있는 다운 언니에게 영화 소개를 넘겨 DB를 미리 채워놓고, 턱시도를 대체할 양복과 구두와 보타이를 사주고, 스마트폰을 넘겨 주고 부산스러웠다. 상 탔다고 온 문자에 펄쩍거리며 기뻐했지만, 여기 저기 썼듯 영화는 감독의 영광, 사업은 사장의 영광. 동생의 이름은 기사에 없었다.

우리를 분발케 하는 동인 중 가장 평범한 건 anonymous에서 famous가 되고 싶은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네가 스토리텔러라기 보단 테크니션이고, 감독보다는 촬영감독을 하고 싶어한다고 짐작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아무개 감독 작품, 이라고 네 이름 박힌 포스터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는 길을 분명한 마음으로 가는 거다.

레쥬메 첫 줄을 무려 칸으로 시작하게 되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제 지워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맘 놓고 팔불출 놀이를 하기로 했다. 이 녀석은 내가 사내에게 받은 연서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글을 준 사람이고, 심야 영화 또는 심야 와인에 좋은 동반자이며, 역시 심야에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는 헛소리에도 군말 보탠 적 없이 사다주는 친절한 동생이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는 좀 멀리 온 사람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일과 그가 잘하는 일이 계속 같은 길 위에 놓이길 기도하며,
아 정말 자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May 24, 2011 01:39 May 24, 2011 01:39


딸에게 보내는 노래

Posted at April 05, 2011 04:41// Posted in diary

늘 듣고 다니던 노래인데 문득,
가사가 상처에 소금물 닿은 것처럼 아팠다.

운전하다 말고 눈물이 핑 도는 정도가 아니라 펑펑 흘러서 참 곤란했다는.

날 손바닥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내 엄마.
엄마에게 봄빛같았던 날들을 숑숑 빼먹으며 딸년이 컸지.

엄마한테, 또 엄마한테 잘하는 아빠한테,
잘해야지
맨날 무너지는 다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

 
딸에게 보내는 노래 (Feat. 성시경) by 토이

세상 모두 멈춘 것 같은 밤
방 안 가득 별빛 쏟아져 내려
지친 하루 피곤한 모습의 엄마와
우릴 닮은 니가 잠들어 있단다

처음 샀던 엄지만한 신발
품에 안고 기뻐하던 어느 봄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던 엄마의 얼굴
그토록 밝게 빛나던 4월의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설레임 가득하던
엄마의 눈망울

사랑스런 너를 만나던 날
바보처럼 아빤 울기만 하고
조심스레 너의 작은 손을
엄만 한참을 손에 쥐고 인사를 했단다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지친 하루 집에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아파트 창문 새로 너를 안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
나는 웃을 수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라는 이름 앞에
때론 힘겨워 눈물 흘릴 때면 이 노래를 기억해 주렴
너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선물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너란 꿈을 품게 됐단다
그리고 널 위한 이 노래

너의 작은 손.. 빛나던 미소..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기억해 주겠니.. 널 위한 이 노래..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April 05, 2011 04:41 April 05, 2011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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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ines & Rituals

Posted at Febuary 01, 2011 18:07// Posted in diary
난 '인생 뭐 별 거 있냐'는 말과, 저 말을 뱉을 때의 말투가 소름돋도록 싫다. 누구에게나 별 것으로 가득해야만 할 인생을 모욕하는 말로 들린다. 특히 이제 사회물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남자애들 입에서 저 말이 나오면 뒷목을 탁 쳐주면서 야! 말 그 따위로 밖에 못해? 인생이 완전 별 거 있지! 하고 신경질 부리고 싶어진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 만난 날이 두 자리수가 넘어가면 발생하는 기념일(난 만난 지 며칠됐다는 기념일은 안세지만...), 입사일(MS는 입사 1년 채우면 기념으로 케익을 주는데 잘 버텼다 장하다는 의미), 첫 키스한 날(내 부모님은 이 날을 기념한다. 그렇다고 뭐 뻑적지근하게 뭘 하는 건 아니고 오늘이 그 날이야... 기억나? 정도의 대화를 추억돋는 표정으로 주고 받은 후 허그 한 판), 한 해의 첫날과 마지막 날 등등... 리추얼을 만들 수 있는 날은 쎄고 쎘다.

우리가 덩어리로 받은 시간, 받긴 받았어도 덩어리 크기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 줄여서 인생. 그 시간에 틈을 내서 우리는 특별한 날들을 심는다.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내일을 조금 신선한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기회. 이런 기회는 의식적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이런 기회를 잘 갖는 게 삶을 행복으로 채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은 아주 좋은 날이다. 새해 첫 날이 두 번 있는 셈이니 두 번 돌아보고 작심삼일도 두 번 할 수 있다. :) 이미 1/12이 지나갔지만 우리집은 구정 쇤다! 고 외쳐주면 모든 게 용서된다. (시집 장가 가기 전까진 세뱃돈도 받고!) 어릴 땐 명절과 제사도 그저 싫기만 했는데, 삶의 리추얼이 뜻은 퇴색하고 형식만 남은 거라고 이해하면 맘이 많이 편해진다. 그냥 family gathering 할 수 있는 기회. 이왕이면 뜻을 살리고 형식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면 더 좋겠지만.

가족 생일도 중요하다. 꼭 화려한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래 네가 태어난 날이 몇 년 전 오늘이지, 그 날 날씨가 어땠고 네 주변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었지, 네 엄마가 널 가졌을 때 뭘 자주 먹고 싶어했고, 이름은 후보 뭐뭐뭐 중에 골랐던 거야, 이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생일 케익이 없어도, 끽해야 인스턴트 미역국을 먹게 된대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진심으로 이 날을 기념(정의: 뭔가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함)하는 것이다.

단위가 꼭 날이 될 필요도 없지. 하루 중에도 이런 틈새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침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던지,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진을 한 폴더에 모아두고 열어본다던지, 일주일에 이틀은 꼭 운동을 한다던지, 토요일 오전은 무조건 늦잠을 잔다던지, 자기전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바르고 좋아하는 향초를 태운다던지... 뭐 이런 '되풀이' 이벤트는 얼마든지 만들기 나름이다.

생일은 완전 축하할 일이고, 새해 인사는 마음을 다해 할 말이며, 기념일은 잘 챙길 일이다. 기념일을 잊을 때 누군가가 서운해 하는 건 빈손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느끼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빈손으로도 얼마든지 그 마음을 증명한다. ㅋㅋ

풍부하게 느끼고, 다양하게 감사하며, 충분히 행복하고, 노력한 만큼 이루고,
무엇보다 건강할 테다.

어서와~ 음력으로도 2011년.
Febuary 01, 2011 18:07 Febuary 01, 2011 18:07


안전 거리

Posted at January 23, 2011 21:44// Posted in diary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다. 기대와 실제 사이의 간격은 멀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자꾸 사랑을 주는 사람을 약올린다.

이번 주 와인 클래스를 들으며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하나였다.
"와인이 좋으시면 이걸 업으로 삼진 마세요."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에 다녔던 이였다. 부연이 필요없었다. 그렇죠. 정말 좋아하는 건 좀 멀리 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

거리를 좁히면 현실이 드러난다.
존경하던 이에게서 발견한 허름한 구석은,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발견한 넓고 깊은 모공은,
으헉 이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땡깡피우고 싶게 만든다.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일수록, 알고 보면 지루한 뒷태가 심상찮은 법. 다가가고 다가가서 사랑하는 무언가를 나와 합쳐 버릴 수록, 그 사랑스러웠던 점들은 다 어디가고 별스럽지 않은 일상만 남는다.

그리고 차츰 식어간다.
두근거리던 마음은 당연해지고, 아무렇지 않아지고, 어느 날엔가는 실망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건 내 생각과 다르다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아 멀리서 보니 날 유혹한 특징들이 드러나 다시 곁으로 간다. 이렇게 혼자 밀어냈다 당기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전혀 양가적이지 않은 100% 사랑이란 세상에 없을지도.

안전하고 싶으면 그냥 멀리 두는 게 좋다. 실망할 일도 속상할 일도 없게.
하지만 그저 멀리서 (변태같이) 바라보기만 하면,
나는 사랑한 것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무르고 싶어지더라도,
오늘은 열심히 다가간다. 안전 거리는 개뿔, 혼잣말하며.

January 23, 2011 21:44 January 23, 2011 21:44


The power of vulnerability

Posted at January 12, 2011 23:24// Posted in diary


1.

눈물나게 좋았던 Ted Talk.
Brene Brown은 자기 연구에서 깨달은 것들이 자신이 살고 사랑하고 일하고 부모되는 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한다. 최근 몇 년간 내가 한 고민을 정리해주는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내 마음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했던 생각, 사람들이 꿈이 뭐냐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는 거"라고 대답할 때 했던 생각들과 같다.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정리하면, 수천개의 사례들을 정리했을 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준은
단순하게도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보여진 패턴은
- 자신의 불완전함을 온 마음으로 인정할 용기(courage)가 있다. 불완전함을 알기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연민을 갖고 있고 친절하다.
- 자신의 연약함(vulnerability)을 안고 간다. 그 상태가 편안하다거나, 몹시 괴롭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을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꺼이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고, 돌려받을 보장없이도 행동하고, 유방암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호흡을 가다듬고, 잘 되건 안 되건 간에 관계에 투자한다.

하지만 상처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취하는 방법은 무뎌지는 것이다.  

문제는 선택해서 무뎌질 수 없다는 거다.
이 쪽은 좋은 감정, 저 쪽은 나쁜 감정으로 분류한 후 슬픔, 수치심, 두려움, 실망 같은 감정은 버리고 좋은 감정만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다른 감정은 놔둔 채, 우릴 힘들게 하는 감정만 무디게 만들 순 없다.

우리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어떤 감정들을 무디게 하면, 삶의 기쁨, 감사, 행복도 함께 무뎌진다.

마지막으로 부모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땐, 완벽함이 가장 위험한 건 부모가 되었을 때라고 한다. 부모의 역할은 완벽한 아이를 안고, "아 내 아이는 정말 완벽해, 내 임무는 얘를 완벽한 상태로 지켜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게 절대 아니라며.

"넌 완벽하지 않아. 그러니까 넌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분투할 거야.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넌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그리고 이런 태도로 키운 부모에게서 자라난 세대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한다. (언니 내 말이!! ㅠ_ㅠ)

생각나는 대로 정리했는데 영어가 짧은 관계로 ㅍㅎㅎ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2.

이 프리젠테이션은 공지영 에세이에서 본 문장과 일부 겹쳤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의 차이 중 뚜렷한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게 화분이라면 필요 없는 누런 이파리나, 그게 꽃이라면 시들거나 모양이 약간 이상한 꽃 이파리들을 달고 있다는 거다. 반대로 죽어 있는 것들은, 그러니까 모조품들은 완벽하게 싱싱하고, 완벽하게 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일수록 불완전하고 상처는 자주 파고들며 생명의 본질이 연한 것이기에 상처는 더 깊다.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중


3.

다른 경로로 여러 번, 너 참 vulnerable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단 뜻인가, resilience가 떨어지는 걸까 고민했었다. 의식적으로 달라지려고 노력도 했던 것 같다.

나 그냥 말랑말랑한 상태로 나답게 살래요. 사랑에 빠지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상처 좀 받으면 어때. 길어봐야 몇 달 죽지 않을만큼 울고, 울다 보면 다시 살아지고, 어느 날 보면 난 더 예뻐져 있지 않냔 말이지.

사람들은 참 불완전하고 그래서 서로 채워줄 수 있어 좋다. 계절이 바뀌고 햇빛에 반짝이던 한강이 얼고 그 얼어붙은 강 위에 눈이 쌓이고 저 물이 녹으면 사람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 언제 그랬니 그 마음이 식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지금 여기, 살아서 숨쉬는 건 참 좋은 거다. :)

January 12, 2011 23:24 January 12, 2011 23:24


따르라 하오시면

Posted at November 27, 2010 01:22// Posted in diary

1.

얼마 전에 썼던 <나를 따르라> 외전 쯤 되는 글. 어떤 힘이 사람이 사람을 따르게 하는지, Leader와 Follower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좀 더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리더십, 영향력(influence), 끌림 등등 여러 가지 단어로 그 힘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머리 검은 짐승의 마음을 사고, 내가 의사 결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계속 궁금하고 신기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런 엄청난 거 없어, 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거야 웃기고 있어, 하며 덮어버리기를 반복한다.

나는 다른 인센티브는 중요치 않고, 상대가 내가 따를만한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그런 사람이 맞냐고 질문했었다. 생각해보니 말로는 증명할 길 없는 그런 질문을 왜 했는지 대략 우문이었구나.

마음대로 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운다. 내가 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배운다. 내 의지로 선택했다고 착각하지만, 그 의지가 굳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부요인이 작용하는지, 때로 그런 요인들이 내가 고를 수 있는 옵션을 얼마나 많이 빼앗는지를 배운다. 이 과정은 숨쉬는 게 힘들 정도로 마음 아프고, 때로 미숙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다르게 쓰면, 이 정도는 마땅하다 느껴질 정도로 충만하고 반짝이며 감사하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이미 말한 적 있듯, 함부로 타인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2.

“딸”이 “따름”의 준말이라는 얘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를 따르다 남편을 따르게 되는, 딸.

언젠가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며 단호히 말했던 게 얼마나 싸가지 없나 이제야 깨닫는다. 일정 수준의 돈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아주 중요하더라.

요 며칠 스스로를 들여다 보니, 나는 그저 이유기를 벗어나지 못한 “딸”일 뿐이었다. 숫자와 계약은 남자들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 나는 그런 거 모르고 살래요, 말랑하고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내 어미가 살았던 모양으로. 끝자락이 헤지려는 코트 자락을 하고, 술과 담배와 겨울 냄새가 섞인 가장이 귀가하면, 그를 끌어 안으며 나를 지켜줄 존재가 돌아왔다고 안도하면 충분했던 딸.

아무리 나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상황과 시간 앞에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월급의 일부를 원천징수 당하고 난 그런 거 모르고 살래 꺄르륵 즐거웠던 나는, 가족의 재정상태를 들여다 보며 아 이 짐이 정말 무거운 거였구나 이제야 안다. 늘 어미보다는 여자였던 엄마는 점점 더 아빠 대신 내게 기대오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서는 지속적으로 우아하기 어렵다는 걸 배운다.

이제서야 안다. 내가 얼마나 따르기만 해왔는지를. 딸은 소중한 걸 지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세계를, 반드시 배워야 할 때가 왔다. 어리광은 끝났다.

November 27, 2010 01:22 November 27, 201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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