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언니에게

Posted at January 11, 2012 02:48// Posted in inspiration/people

때론 특별히 마음가는 사람이 있다.

난 그녀를 첫 직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고, 내 주변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오지도 못했다.

나는 우선 언니가 선이 곱고 예뻐서 좋았다. 금요일 캐쥬얼을 입어도 되는 날, 언니는 청바지를 입고도 어찌나 여성스럽고 단정한지, 보고 있으면 흐뭇했다. (내 안에 남자가 있나봐요….) 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부장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쓸데없이 무거웠던 반면, 언니는 별명이 ‘징징이’일 정도로 늘 어리광과 애교가 있었다.

나는 금새 회사를 옮겼고, 우리는 일 년에 한 두 번쯤 얼굴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두 계절에 한 번 만나 모시는 상사 욕을 하기도 하고, 답 안나오는 연애 상담을 하기도 했다. 언니는 부족한 공부도 더 하고, 일에서도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다. 계획은 실행되었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면 밥 못 먹고 학교로 뛰어가 수업을 듣는 날이 계속되었다. 학기 중엔 어찌나 징징거리는지 들어주기가 딱했다. 때론 신촌 가까이 사는 내게, 너 집이면 나랑 저녁 좀 같이 먹어달라고 맥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하곤 했고.

이제 논문만 남았단다. 봄이면 결혼 한단다. 형부 되실 분에 대해 들으니 언니를 따라다녔던 딴 남자들보다 착하고 반듯하고 믿음직스럽다. 공부 좀 하더니 남자 보는 눈도 생겼구나(!)

나는 세상 성공했다는 어떤 사람들보다, 언니가 존경스럽다.

언니가 견뎠을 시간 앞에서 나는 맨날 일부러 쌀쌀맞게, 그만 좀 징징거리고 그 상황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뭐였냐고 물어댔지만, 사실 무척 힘들었을 거 안다. 언니가 초라해졌을 상황과, 떨려도 꿈꾸는 표정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을 짐작해본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 따뜻하고 뭉클하다.

오늘 들려 준 언니의 새로운 계획을 축복하며. 자신없다고 징징거리면서도 결국 다 해낼 거 아니까, 올해부턴 나한텐 징징거리기 예고편만 하고, 본방송은 이제 형부되실 분한테 합시다. 다시 한 번, 난 참 언니가 대견하고 기특하고 존경스럽다. :)

January 11, 2012 02:48 January 11, 2012 02:48


인생의 중요한 순간

Posted at January 06, 2012 12:44// Posted in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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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써있다.

때때로 나는 얘가 영영 안 돌아오는 건가 거기 영영 사는 건가 섭섭하지만,
1년에 한 두 번쯤 보고 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됐지 뭐, 한다.

현진과 학교 후문에서 같이 살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다시 10년도 금방이겠지.
이십대 초반 말갛던 얼굴이 어른되었듯
이 새 신랑 신부의 얼굴도 낡아가겠지만ㅋ
다시 살아내는 10년동안 실컷 평화롭고 행복하길.
January 06, 2012 12:44 January 06, 2012 12:44


새해에 살자

Posted at January 05, 2012 11:21// Posted in diary

나이를 한 살 먹은 걸로 아는데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좋은 시기 응원하고 축복만 해도 모자란 때에 근거도 없는 불안감을 알아달라며 한참 떼를 써놓고 후회한다.

걱정하거나 불안해 한다고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작은 기쁨에 크게 기뻐하고, 그 외는 빨리 잊어야지. 내가 용서해야 할 일들은 현재가 아닌 곳에 있고, 당신과는 관계가 없다.

Life is short, break the rules. Forgive quickly, kiss slowly. Love truly. Laugh uncontrollably and never regret anything that makes you smile.

January 05, 2012 11:21 January 05, 2012 11:21


Attachment

Posted at September 19, 2011 02:52// Posted in diary

혹성탈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

Don't get too attached.

그러나 미리 말했대도
아님 attachment theory를 잘 안대도
말이나 이론대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September 19, 2011 02:52 September 19, 2011 02:52


은발이 너무해

Posted at July 22, 2011 00:25// Posted in inspiration/people

능력은 안 되더라도
외모는 이런 느낌으로 늙고 싶다.
아오 예뻐.

근데 울 어무이 아부지를 보면
도대체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기미조차 안보이니
은발은 안되겠네. 흠.

July 22, 2011 00:25 July 22, 2011 00:25


최고의 보스, 최고의 커피

Posted at July 04, 2011 23:24// Posted in diary

내 커리어에서 앞으로 다신 못 만날, 최고의 보스이자 멘토였던(그러나 그 땐 이렇게까지 절절하진 않았던), 홍마왕님.

어느날 뜬금없이 커피에 빠지시더니만
Microsoft 임원 따위, 슉 내다버리고
커피가 나오는 나라들, 중미니 남미니 여행을 다녀오시고 교육을 받고 하시더니
기어코 커피 가게를 차리셨다.

결국 모든 먹거리의 근본은 좋은 재료. 홍마왕님의 영도 아래 ㅋㅋ 스페셜티 커피란 게 있단 걸 알게 되고, 로스팅이나 커피 내리는 기술은 부차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데서 커피 마시면, 오늘처럼 어지럽고 속이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커피 자체가 속에 안 좋다기 보단, 안 좋은 커피가 속에 안 좋은 거였어.

고기 맛을 보고 나면 돌아 갈 수 없다. 홍마왕님의 커피가 떨어지니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하루다.

심지어 울 사무실 90년생 인턴조차,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딴 건 맛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캡슐 커피 머신 두 대는 먼지만 뽀얗고.

꼭, 드셔보시길. 지금까지 마신 건 커피도 아니었단 걸 알게 될테니. ㅎㅎ

July 04, 2011 23:24 July 04, 2011 23:24


나는 팔불출입니다

Posted at May 24, 2011 01:39// Posted in diary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건 기쁜 동시에 겁나는 일이다.

저 길 좋아보인다,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삶을 보면 '으악 내가 뭔가 된통 잘못한 게 아닐까?' 하고 그 때 훈수 괜히 뒀나 후회를 한다.

이런 훈수 중에 젤로 묵직했던 일은 동생의 입시였다. 격하게 압축하면 글을 쓰고 싶어하던 녀석을 국문과가 아닌 영화학과를 가게 만들었다. 글을 쓰던 영화를 찍던, 등 따시고 배부른 날 오기가 쉽지 않다는 건 공통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문과를 갔으면 교직이수로 선생질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자주 미안했다.

가장 미안한 점은 동생이 내 욕심을 대리하게 했다는 거였다. 세상 어느 누가 영화나 음악을 싫어한다고 대답하겠냐마는, 나는 좋은 걸 좋다고 강하게 쫓지 못하고, 신방과 정도에서 타협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동생의 학교와 전공을 얘기하면서 대리만족을 해왔다.

옆에서 지켜보니 동생 말마따나 영화는 '민폐의 예술'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부분은 예술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민폐에서 끝나고 말았다. 밤샘 촬영을 하고 들어와 골아떨어지는 녀석을 보거나, 한 겨울에도 열이 넘쳐 늘 반소매를 입던 녀석이 무려 내복을 챙기고, 무릎까지 바람이 들어온다고 하면 맘이 영 시려웠다.

시려워도 별 수 있나, 그의 학교생활과 연애지사, 성장을 지켜보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졸업작품으로 촬영한 영화가 칸에 갔다.
단편 영화 부문인 씨네 파운데이션. 1,589편의 단편 중에 16편이 선정되었다. 그 16편 중에 다시 3편 안에 들었다는 소식. 심사위원이 미셸 공드리.

감독은 집에 와서 가끔 자고 가던 동생의 학교 동기인데, 제대로 인사해본 기억은 없고, 그 친구가 공급해 준 모 브랜드의 샴푸를 매일 몹시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는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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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웹사이트 스크린 캡쳐 :) 링크는 여기.



네이버 영화팀에 있는 다운 언니에게 영화 소개를 넘겨 DB를 미리 채워놓고, 턱시도를 대체할 양복과 구두와 보타이를 사주고, 스마트폰을 넘겨 주고 부산스러웠다. 상 탔다고 온 문자에 펄쩍거리며 기뻐했지만, 여기 저기 썼듯 영화는 감독의 영광, 사업은 사장의 영광. 동생의 이름은 기사에 없었다.

우리를 분발케 하는 동인 중 가장 평범한 건 anonymous에서 famous가 되고 싶은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네가 스토리텔러라기 보단 테크니션이고, 감독보다는 촬영감독을 하고 싶어한다고 짐작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아무개 감독 작품, 이라고 네 이름 박힌 포스터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는 길을 분명한 마음으로 가는 거다.

레쥬메 첫 줄을 무려 칸으로 시작하게 되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제 지워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맘 놓고 팔불출 놀이를 하기로 했다. 이 녀석은 내가 사내에게 받은 연서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글을 준 사람이고, 심야 영화 또는 심야 와인에 좋은 동반자이며, 역시 심야에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는 헛소리에도 군말 보탠 적 없이 사다주는 친절한 동생이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는 좀 멀리 온 사람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일과 그가 잘하는 일이 계속 같은 길 위에 놓이길 기도하며,
아 정말 자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May 24, 2011 01:39 May 24, 2011 01:39


이 글에선 그를 '좀비 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하필 좀비 씨가 된 사연은 맨 마지막에. ㅎㅎ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좀비 씨가 누나, 나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요, 심장이 얼굴에서 뛰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설명할 때는 진짜 이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저러다 말겠지, 몇 달 하다가 치우고 그냥 병특 회사나 왔다갔다 하고 연애나 하겠지 했다.

힘 닿는대로 그 회사에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지인들을 찾아 회사 소개서 같은 걸 돌려주긴 했지만, 막상 다만 몇 천이라도 꽂는 곳은 안 나왔다. 괜찮아 보여, 이런 상황에서 쓰면 좋을 것 같아 정도의 말이 오갔을 뿐. 중간 중간 고민이 있어요 이슈가 있어요 이야기 할 때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몇 마디 '관전평'을 날렸을 따름이다. 늘 나는 말만 많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문순이이자 이미 엉덩이 무거워진 늙은이일 뿐이었고, 좀비 씨를 비롯한 어린 친구들에게 바람은 잡아놓고 정작 나는 마른 길로만 가려하는, 심지어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있었다고 그 방향으로 난 모든 길에서 도망가고자 했던 겁쟁이일 뿐이었다.

오늘 좀비 씨가 복잡한 표정으로, 예전과 좀 다른 차원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확 느꼈다.
어머 너, 엄청 컸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인연이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좀비 씨를 더 어리게 봤는지도 모르겠다(말 지지리도 안 듣고 고집 센 선수와 코칭 스텝 정도? ㅋㅋ).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나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거 다 만들어줄 수 있어요, 구현은 문제 없어요, 할 때 하이고 그 놈 참 구라도 쎄게도 친다, 생각했었다.

지난 겨울 내가 제대로 속 얘기도 아니하고 징징거릴 때, 네 위로가 자주 고마웠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야. 진심 오늘 좀 감동했거든. 이런 저런 고민에 속이 계속 시끄러웠었는데, 신기하게 좀비 씨와 대화를 하면서 깔끔히 정리된 기분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받기도, 때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나보다.

좀비 씨의 고민에 내가 "지속 가능한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좀비 씨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땐, 머잖아 힘들어 질 듯 싶다. 어느 날엔가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허나 속으론 누나 잘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라고 말할 날이 올 듯 싶어 왈칵 마음이 급해졌다. 성질 못된 내게 자극은 선배들보다 후배들에게서 온다.

뭐 예상하셨겠지만 이런 글은 뻔하고 허무하게 끝낼 수 밖에 없다. ㅋㅋㅋ
나도 분발할 테니, 좀비 씨도 분발해 주세요. 이 정도?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이 갔고, 오늘 들은 지표도 훌륭했고, 네 성장 속도도 훌륭하여라.

아참, 그가 좀비 씨가 된 사연인즉슨
어느 창업팀이나 요새 개발자 구하기가 참 어려운가 보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게장을 먹으며.

"그래서 좀비 킹이 있어야 돼요."
"무슨 소리야?'
"정말 잘하는 슈퍼 개발자가 있으면 그 사람 보고 다른 개발자들이 모이거든요. 좀비 킹이 있으면 좀비가 늘어나듯이요."

살짝 송구하오나 참 좋은 비유같다. ㅎㅎㅎ

April 19, 2011 22:57 April 19, 2011 22:57


딸에게 보내는 노래

Posted at April 05, 2011 04:41// Posted in diary

늘 듣고 다니던 노래인데 문득,
가사가 상처에 소금물 닿은 것처럼 아팠다.

운전하다 말고 눈물이 핑 도는 정도가 아니라 펑펑 흘러서 참 곤란했다는.

날 손바닥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내 엄마.
엄마에게 봄빛같았던 날들을 숑숑 빼먹으며 딸년이 컸지.

엄마한테, 또 엄마한테 잘하는 아빠한테,
잘해야지
맨날 무너지는 다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

 
딸에게 보내는 노래 (Feat. 성시경) by 토이

세상 모두 멈춘 것 같은 밤
방 안 가득 별빛 쏟아져 내려
지친 하루 피곤한 모습의 엄마와
우릴 닮은 니가 잠들어 있단다

처음 샀던 엄지만한 신발
품에 안고 기뻐하던 어느 봄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던 엄마의 얼굴
그토록 밝게 빛나던 4월의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설레임 가득하던
엄마의 눈망울

사랑스런 너를 만나던 날
바보처럼 아빤 울기만 하고
조심스레 너의 작은 손을
엄만 한참을 손에 쥐고 인사를 했단다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지친 하루 집에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아파트 창문 새로 너를 안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
나는 웃을 수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라는 이름 앞에
때론 힘겨워 눈물 흘릴 때면 이 노래를 기억해 주렴
너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선물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너란 꿈을 품게 됐단다
그리고 널 위한 이 노래

너의 작은 손.. 빛나던 미소..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기억해 주겠니.. 널 위한 이 노래..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April 05, 2011 04:41 April 05, 2011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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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ines & Rituals

Posted at Febuary 01, 2011 18:07// Posted in diary
난 '인생 뭐 별 거 있냐'는 말과, 저 말을 뱉을 때의 말투가 소름돋도록 싫다. 누구에게나 별 것으로 가득해야만 할 인생을 모욕하는 말로 들린다. 특히 이제 사회물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남자애들 입에서 저 말이 나오면 뒷목을 탁 쳐주면서 야! 말 그 따위로 밖에 못해? 인생이 완전 별 거 있지! 하고 신경질 부리고 싶어진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 만난 날이 두 자리수가 넘어가면 발생하는 기념일(난 만난 지 며칠됐다는 기념일은 안세지만...), 입사일(MS는 입사 1년 채우면 기념으로 케익을 주는데 잘 버텼다 장하다는 의미), 첫 키스한 날(내 부모님은 이 날을 기념한다. 그렇다고 뭐 뻑적지근하게 뭘 하는 건 아니고 오늘이 그 날이야... 기억나? 정도의 대화를 추억돋는 표정으로 주고 받은 후 허그 한 판), 한 해의 첫날과 마지막 날 등등... 리추얼을 만들 수 있는 날은 쎄고 쎘다.

우리가 덩어리로 받은 시간, 받긴 받았어도 덩어리 크기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 줄여서 인생. 그 시간에 틈을 내서 우리는 특별한 날들을 심는다.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내일을 조금 신선한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기회. 이런 기회는 의식적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이런 기회를 잘 갖는 게 삶을 행복으로 채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은 아주 좋은 날이다. 새해 첫 날이 두 번 있는 셈이니 두 번 돌아보고 작심삼일도 두 번 할 수 있다. :) 이미 1/12이 지나갔지만 우리집은 구정 쇤다! 고 외쳐주면 모든 게 용서된다. (시집 장가 가기 전까진 세뱃돈도 받고!) 어릴 땐 명절과 제사도 그저 싫기만 했는데, 삶의 리추얼이 뜻은 퇴색하고 형식만 남은 거라고 이해하면 맘이 많이 편해진다. 그냥 family gathering 할 수 있는 기회. 이왕이면 뜻을 살리고 형식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면 더 좋겠지만.

가족 생일도 중요하다. 꼭 화려한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래 네가 태어난 날이 몇 년 전 오늘이지, 그 날 날씨가 어땠고 네 주변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었지, 네 엄마가 널 가졌을 때 뭘 자주 먹고 싶어했고, 이름은 후보 뭐뭐뭐 중에 골랐던 거야, 이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생일 케익이 없어도, 끽해야 인스턴트 미역국을 먹게 된대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진심으로 이 날을 기념(정의: 뭔가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함)하는 것이다.

단위가 꼭 날이 될 필요도 없지. 하루 중에도 이런 틈새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침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던지,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진을 한 폴더에 모아두고 열어본다던지, 일주일에 이틀은 꼭 운동을 한다던지, 토요일 오전은 무조건 늦잠을 잔다던지, 자기전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바르고 좋아하는 향초를 태운다던지... 뭐 이런 '되풀이' 이벤트는 얼마든지 만들기 나름이다.

생일은 완전 축하할 일이고, 새해 인사는 마음을 다해 할 말이며, 기념일은 잘 챙길 일이다. 기념일을 잊을 때 누군가가 서운해 하는 건 빈손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느끼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빈손으로도 얼마든지 그 마음을 증명한다. ㅋㅋ

풍부하게 느끼고, 다양하게 감사하며, 충분히 행복하고, 노력한 만큼 이루고,
무엇보다 건강할 테다.

어서와~ 음력으로도 2011년.
Febuary 01, 2011 18:07 Febuary 01, 20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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